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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의 작업

이우환,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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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박함, 소박함, 천진함.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윤형근의 작품을 감싸고 있는 세계다. 그의 그림에는 장식성이라고는 한 점도 없고, 오히려 흙냄새 나는 농부의 체취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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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서 그것들은 너무나 졸박하고 소박하고 천진해서 그림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나무틀에 맨 생면포나 삼베 위에, 테레빈에 갠 엄버를 붓에 묻혀 굵은 세로 막대 하나, 둘, 혹은 셋을 무심히 그어 놓았을 뿐이다.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언뜻 보면 이 졸박함과 소박함과 천진함은 그의 기질의 표현이자 동시에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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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의 개인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든, 이것이 끊임없는 노력과 세련된 지성으로 공들여 다듬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붓질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엄버 용액이 마치 자연스러운 얼룩처럼 천의 한 부분에 스며든 듯 보이고, 그 결과 화면은 특별히 색이나 형태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엄버 용액이 세로 막대의 형태로 입혀지는 방식은 걸려 있는 천과 흘러내리는 엄버 용액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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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우든 화면 전체와 막대 사이의 균형, 천과 엄버 용액 사이의 색조를 작가는 특정한 이미지나 형태를 의식하지 않은 채 이루어 낸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유롭고 너그러우며 조화로운 표현의 차원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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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에게 캔버스는 더 이상 자기 이미지를 표현하는 성역이 아니다. 붓도 엄버 용액도 그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부리는 노예나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은 작가의 의식, 그의 손과 행위와 다르지 않은 것, 곧 열린 시각적 화면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동원되는 유기적인 요소들이다. 작가로서 윤형근이 가장 마음을 쓰는 것은 손과 행위를 매개로 천 조각과 색을 마주 세우고, 그 둘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특별한 지각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을 그려 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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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의 그림에는 이미지가 없어 텅 빈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시각적으로는 단단한 실재감과 확장을 느끼게 한다. 이는 아마도 그의 행위와 재료의 결합 때문일 것이다. 그 결합은 이를테면 반(半)회화, 혹은 반(半)사물이라 할 만한 지극히 섬세한 현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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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설명하자면, 세로 막대 모양의 엄버 용액이 화면 속에서 어떤 형태나 상황을 띠든, 그것은 공간과 구성에 관한 기존의 이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인다. 이 또한 앞서 말한 까닭에서다. 이러한 특징은 어쩐지 오늘날 한국 화가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처럼 보이며, 그들의 작품은 흔히 사이비 회화처럼 보이고 사물로서도 매우 모호하다. 그래서 그것들은 분석할 수 없고, 원초적이며,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비존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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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윤형근의 경우, 그의 작품에서는 개인적 기질에 깊이 밴 엄격한 자기 규율이 엿보인다. 정보를 분석해 답을 얻으려는 개념미술가들과 달리, 그의 회화 방식은 뛰어난 현대적 표현 태도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개성에 꼭 맞는 삶의 방식에 철저히 충실하며, 그 때문에 흔히 미지의 지평을 꿈꾸는 작가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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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의 작품에는 꾸밈이 없고, 열린 채로 넓고 생기 있는 화면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그의 그림이 보는 이에게 안겨 주는 소박한 평화의 느낌은 의도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의 표현 태도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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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재료와 그의 손과 행위는 평면에 대한 강한 욕구 속에서 새롭게 만난다. 이 화면에서 윤형근의 작품은 하나의 암시, 아니 하나의 행복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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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마쓰 갤러리 개인전 도록, 도쿄, 1976

윤형근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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