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의 작업
조셉 러브, 1976
오늘날 극동의 미술을 살펴보면, 필연적으로 생겨난 듯한 뚜렷이 나뉜 두 경향이 주도권을 두고 다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모더니즘을 향한 경향으로, 그 개념이나 이상을 서구식으로 해석하는 데 무게를 둔다. 마치 문화적으로 ‘우월한’, 즉 진화 과정에서 더 앞선 나라들의 산업적, 기술적 성취를 그대로 예술의 세계로 옮겨 올 수 있다는 듯하다. 그리하여 금세기 초 에콜 드 파리의 회화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필리핀, 중국, 일본, 한국의 미술계에 들어왔다. 일종의 인상주의나 상징주의로서, 서구 양식을 이국적인 무엇으로 만드는 동양적 풍미를 곁들인 채로 말이다. 때로는 야수주의가 ‘문인화’에 흡수되었듯 이미 전통 속에 있던 미술 형식에 동화되어 길들여진 아카데미가 되기도 했다. 혹은 완전히 수입된 산물로 남아 끝내 그 민족의 진정한 표현이 되지 못하기도 했다.
이와 대등하면서도 정반대인 경향은, 외래의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모든 외래의 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전통’ 양식이 방어적으로 채택되고, 한때 생명력 있고 강건했던 예술의 점점 더 나약한 변주들이 만들어진다. 민예에 대한 열광처럼, 이 거꾸로 된 아카데미 역시 일종의 내부 관광이다. 평범한 외국인 방문객은 이를 보고 그 나라의 ‘진짜’ 예술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아카데미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두 입장 모두 진정으로 좋은 예술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결함을 안고 있다. 좋은 예술의 부모는 자유와 제약이다. 지역적이든 민족적이든 개인적이든 자신의 뿌리가 지우는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살아 있는 자유로운 독창성을 지닐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마도 서구보다 극동에서 더욱 절실하게 진실이다.
윤형근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예술에 대한 그의 기본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주된 관심이 사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예술은 삶 다음에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온다. 음식이 몸에 흡수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그의 예술이 지닌 무반성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가능성으로서 고국 한국에서의 삶의 경험에 스스로를 매우 적극적으로 내맡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외부의 영향을 소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행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그림은 비교적 정제도가 낮은 리넨 캔버스 위에 그려진다. 이것이 그의 예술에 놓인 첫 번째 제약이며, 그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최대한 활용한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 얇은 표면 위에, 먼저 테레빈유로 볏짚 빛깔의 천을 아주 엷게 물들인 뒤 유채를 얇게 한 겹 한 겹 스며들게 한다. 색은 점점 더해져 마침내 캔버스의 가장자리가 검정에 가까운 깊은 빛으로 빛나게 되는데, 최근 작업에서 이 색은 엄버와 인디고 블루로 이루어진다.
그의 초기 작업은 비교적 밝은 색의 줄무늬를 대략 나란히 배열한 것으로,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와 모리스 루이스의 작업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한다. 윤형근이 최근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들을 둘러보며 가장 깊은 친밀감을 느낀 작가들이 바로 이들이다. 한국 사찰의 단청을 보면 매우 강렬한 장식적 색채의 전통을 뚜렷이 느낄 수 있지만, 오늘날 한국 작가들은 진지한 작업에서 원색에 가까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그리하여 윤형근은 1972년부터 점차 밝음을 가리기 시작해 마침내 팔레트의 거의 전부를 버리고 지금의 엄버와 청색만을 남겼다. 이 색들은 너무나 어두워서 순수한 검정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다만 덧붙여야 할 것은, 그의 색채 폭이 더 넓고 밝았던 시기에도 그는 로스코의 빛의 초현실주의나 루이스의 색채 실험에는 결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에서 나를 매료시키는 한 가지는 상반된 것들이 공존할 가능성이다. 현재 작품의 중심부는 빈 캔버스로, 가장자리보다 훨씬 밝다. 그런데도 깊이 물든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양옆 띠의 어두운 색 웅덩이를 통해 비쳐 나오는 빛이, 건초처럼 불투명하고 다소 메마른 중심부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중심부에는 상징적인 공간감이 있어 그림에 풍경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실제 공간이 아니다. 그와 대등하고 정반대인 촉각적 감각이 화면 전체를 보는 이에게 아주 가까이 붙들어 두어 환영적 공간의 가능성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이 그림들이 풍경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지점이 여행자에게 똑같이 가까운 세계다. 그림은 그가 손으로 한 지점 한 지점을 만지며 지나간 바로 그 여정의 기록이다.
그러나 윤형근의 작업에서 어떤 바깥 세계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아마 더 중요한 것은 이미지와 과정 사이의 상호작용일 것이다. 캔버스를 따라 내려가는 짙은 색의 불규칙한 띠는 손의 움직임과 캔버스를 물들이는 과정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는 다소 원초적인 차원에서의 어떤 삶의 증언 이상으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거의 의지의 작용 없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다. 그림 그리는 방식으로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쉬워 보인다. 그는 무심한 듯 이미지를 쌓아 올리지만, 그 이미지는 시각적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 인상은 패턴이라기보다 그림에서 눈을 뗀 뒤에도 보는 이에게 다가오는 강한 존재감이다.
이 모든 설명이 몹시 인상주의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그림들은 실제로 강한 심리적 인상을 낳는다. 그것은 자연의 시각적 사실에 대한 묘사도, 낭만적인 분위기 조성도 아닌, 자연과 깊이 맞닿는 실제적인 감각이다. 세련된 회화의 시대에, 윤형근의 작업이 뉴욕의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만큼 강인하고 회화적이면서 동시에 한국 시골의 김칫독만큼 소박하고 흙냄새가 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그림을 그 사람의 성품과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는 거칠고 꾸밈없는 정직함의 분위기를 풍기며, 도시의 동시대 삶 일부에서 볼 수 있는 퇴폐와 지나친 세련을 모두 혐오하는 성품을 지녔다. 사람과 예술 모두에 깃든 이런 신선함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길러 줄 정신의 거친 양식이다.
* 문헌화랑 개인전 도록, 서울,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