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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 윤형근 - 도널드 저드의 퍼즐

김현숙, 2016

 

 

 

 

마포 캔버스 위에 물감을 듬뿍 머금은 넓고 굵은 붓으로 위에서 아래로 대담하게 그어 내린 단색 추상화. 기둥 모양이나 직사각형 한두 개, 많아야 다섯 개 정도의 기둥이 나타나는 단순한 그림이다. '그렸다'기보다 '물들였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태와 색과 구성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고 바탕에 물감을 올리는 방식이 단순해 보인다고 해서 그림이 짧은 시간에 완성되었으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색의 깊이와 번짐, 테레빈유가 퍼지는 정도를 조절하려면 섬세한 손과 훈련된 눈이 필요하기에 완성까지 며칠,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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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윤형근의 그림을 보고 '미니멀'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너무 평범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한국 단색화는 작가가 직접 해내는 집약적인 손작업을 수반하는데도 한때 이 양식을 '한국의 미니멀리즘'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는 단색 회화를 미니멀리즘과 동일시하는 일반화된 경향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을 비개성적이고 익명적인 사물로 본 서구 미니멀리즘과,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해 보편적 속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자 한 한국 단색화 사이에는 어긋남이 있다. 따라서 단색화가 '미니멀'하다는 평가는 점이나 선 같은 형태를 기본 요소로 되돌려 개념을 전개한다는 점, 또는 표현과 조작을 최소화한다는 형식적 측면에 한해서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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젯소를 바르지 않은 갈색 생캔버스 위에 번트 엄버와 울트라마린 블루를 섞어 칠한 흙빛 색조는 그림의 제목이 되었고, 작가 단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작가는 오랫동안 삶의 고난을 견뎌 낸 끝에 썩어서 흙이 되어 가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깊은 깨달음을 얻었고, 그 경험에서 그의 암갈색 단색화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다. 누구도 자연의 섭리의 냉엄함을 비켜 갈 수 없다는 처연한 진실을 깨달은 경험이 첼로의 묵직한 음색으로 표현되어서인지, 어떤 이는 그림 앞에서 완전한 침묵과 마주하고, 어떤 이는 깊고 어두운 심연의 가장자리에 선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 또 어떤 이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숭고함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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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의 단색화와 처음 만났을 때 나의 경험 역시 '소멸'이라는 관념과 닿아 있다. 마포 캔버스 위에 칠한 암갈색 단색조는 기억의 먼 구석에서 할아버지의 죽음, 더 정확히는 삼베 상복을 입은 사람들을 불러냈다. 지붕 꼭대기에 올라 고인의 옷을 흔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치던 노인의 모습, 상여를 멘 사람들이 부르던 가락의 기억은 '슬픔'이나 '상실' 같은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이승을 떠난 저세상을 향한 그 소리는 공허하면서도 장엄하고 느슨했다. 윤형근의 「엄버-블루」는 가을 나무, 초가집, 볏단을 쌓아 둔 마당, 가마니 같은, 우리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농경 사회의 정서를 품으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에 대한 연상을 넘어 깊은 울림과 신성한 영성을 허락한다. 이 이중의 의미는 아마도 그림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삼베에 얽힌 문화적 감수성이 하나의 밈의 구조를 통해 우리의 지각을 윤형근의 「엄버-블루」와 이어 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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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서 나왔다'고 말하며 그 영향을 강조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많은 이들이 추사의 글씨와 예술을 흠모했고, 그의 글씨는 획과 결구와 법도에서 실로 독보적이었다. 그를 본받으려는 이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추사라는 봉우리에 오르는 길을 어떻게 택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작업도 저마다 다른 모습을 띠었다. 추사에 대한 이 다양한 반응 가운데 윤형근은 어디에 자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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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조직하는 예술이다. 그것은 글자와 낱말의 뜻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자를 쓰는 문화권에서 세련된 문화의 한 영역을 이룬다. 먹을 갈아 만든 먹물의 농도와 획의 굵기, 글자 사이의 비례와 균형, 공간 구성은 쓰는 이의 개성과 창의성을 드러내며, 기교만 익혀서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이 서예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이른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야 한다. 이는 수련과 공부로 다져진 사람의 인품과 품격을 가리키는 말로, 학문으로 닦여 고결해진 인품이 정제되고 우아한 글씨를 통해 드러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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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글씨에는 응축되어 있으면서도 소박하고 시적인 향기와 기운이 있다. 그것은 자아를 비운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선(禪)의 경지를 담고 있다. 윤형근이 단순한 형태와 바탕으로 이루어 낸 소박한 아름다움은 이 선의 경지에 이르려는 그의 시도를 보여 준다. 나무 둥치처럼 보이는 윤형근의 굵은 세로 획은 뾰족한 붓끝이 모든 획의 한가운데를 힘 있게 지나가는 중봉(中鋒)의 필법을 떠올리게 한다. 동양에서 서예와 회화는 그 근원이 같다고 여겨지며, 회화의 바탕은 서예에서 비롯된다. 윤형근은 글씨를 회화의 바탕으로 지켰고, 서법의 근본인 붓끝 또한 지켰다. 이 둘은 모두 윤형근 회화의 미니멀리즘을 이루는 요소다. 획을 그을 때 붓끝을 세우는 것은 글씨의 기본이며, 이를 익힌 뒤에야 다양한 필획을 추구할 수 있기에 추사 자신도 이 점을 크게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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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캔버스 위에는 암갈색의 길쭉한 직사각형 기둥이 칠해져 있지만, 정작 드러나는 것은 기둥 사이의 빈 여백이다. 이런 방식은 달을 드러내기 위해 달 바깥을 칠하거나, 눈 덮인 나뭇잎을 표현하기 위해 잎 주변을 먹으로 칠하는 수묵화의 기법과 비슷하다. 칠한 부분과 여백의 배치, 그리고 그 강한 대비는 글자 사이의 여백을 세심하게 다룬 추사 자신의 서풍과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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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윤형근의 단색화에서 구조의 미학을 발견한 이는 서양의 도널드 저드였다. 저드는 1990년대 초 한국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 때문에 방한했을 때 윤형근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텍사스 마파의 치나티 재단에서 윤형근의 개인전을 열자고 제안했다. 저드는 해방 직후 미군정기에 한국에서 1년 동안 건설 기술병으로 일했다. 그때 종묘 건축과 동양의 오방색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서양인이 대개 정복자의 입장에서 이국의 민속과 하위문화를 소비하던 것과 달리, 저드가 동아시아 문화에 뿌리를 둔 상징 체계와 건축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그의 남다른 학식과 통찰을 보여 준다. 1993년에 펴낸 그의 에세이집은 음양과 풍수 이론을 다루고 있으며, 그의 서재에는 동양미술 관련 서적이 1만 3천 권이나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그의 예술관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종묘 건축은 유교적 이념에 따른 극도의 절제와 간결함의 미를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제례 공간이다. 왕조가 역사를 이어 가면서 건물은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유기체처럼 가로로 길게 늘어났고, 건물 안에는 왕과 왕비의 높은 신주가 가로로 줄지어 놓였다. 내가 윤형근의 암갈색 그림에서 소멸에 관한 문화적 기억을 불러냈듯이, 녹슨 철판의 표면을 닮은 그의 그림은 저드의 마음속에 종묘 건축과 그 안에 놓인 신주의 배열과 구성을 떠올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방 안에 놓인 길쭉한 직사각형 신주의 구조와 형태, 색의 분위기는 윤형근의 암갈색 추상화와 매우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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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드의 '특수한 사물(Specific Objects)'과 윤형근의 암갈색 그림 사이의 유사성은 균일한 직사각형 배열이라는 단순한 닮음을 넘어,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시간과 공간, 순간과 영원이라는 철학적 물음을 구조적으로 표현한다는 데까지 이른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고, 인상의 차원을 넘어 지성의 차원에서 작가들 사이의 암묵적 대화를 시사하는 추사-윤형근-저드의 퍼즐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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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KM 갤러리 «포용: 윤형근과 추사 그리고 도널드 저드» 전시 브로슈어, 서울, 2016

추사 - 윤형근 - 도널드 저드의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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