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s in Black : Yun Hyong-keun, Life and Art
최종태, 2018
그는 거친 천 위에 새까만 물감으로 막대기 같은 선을 아래로 내리긋고 있었다. 그가 날마다 그려 내는 화면은 하나같이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검정으로 가득했다. "왜 검은 선만 그립니까?" 내가 말을 건네자 그는 "화가 나서 그렸지!" 하고 대답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은 터무니없는 유신헌법을 만들고, 그 위원들이 대통령을 뽑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세웠다. 그 얼마 전 나는 이사장을 뽑기 위해 열린 한국미술협회 총회에 참석했다. 규정이 바뀐 줄도 몰랐는데, 이사장을 뽑는 방식이 달라져 있었다. 회원들이 어떤 후보를 추천하고 박수로 그를 이사장으로 뽑는 식이었다. 현장에 있어도 실제로 표를 던질 방법은 없었다. 회의장 밖 복도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 계단을 올라오던 윤형근과 마주쳤다. 우리는 곧장 명동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얼마 전 서울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가 무려 20일 만에 풀려났다고 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당시 윤형근은 한 여자고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나도 같은 재단의 중학교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1961년 5·16 군사정변 뒤 그만두었다. 알려진 바로는 윤형근이 어떤 일 때문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고, 10년 동안 근무한 학교를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일이란 성적이 분명히 낮은 한 중학생이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기록된 사건이었다. 교사들은 그 학생이 중앙정보부를 등에 업은 권력층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일을 덮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날 교무회의에서 윤형근은 교장에게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그 다음 날 오후, 명동에 나갔던 그는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남산으로 끌려갔다. 특별한 죄가 없었기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약속을 한 것 같았다.
그날부터 그는 할 일이 없어졌다. 바로 그 무렵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경찰의 요시찰 명단에 올라 있었다. 철권을 휘두르던 유신 시절이라 그를 찾아오는 친구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 뒤로 우리는 10년 동안 거의 날마다 만났다. 반골로 낙인찍힌 그와 어울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와 얽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누구도 감히 그의 곁에 가지 않았다. 김정희가 유배를 갔을 때도 그를 찾는 이가 없었다. 김정희는 유배 중에 흔히 〈세한도(歲寒圖)〉로 알려진 가장 유명한 수묵화를 그려, 은혜와 우정에 대한 고마움으로 제자 이상적에게 주었다. 이상적이 없었다면 이 걸작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윤형근 그림의 출발점이다. 그 입시 비리 사건이 없었다면 윤형근이 남산에 갈 까닭도 없었고, 그 거무스름한 그림들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윤형근의 양심, 부정을 눈감아 넘기지 못하는 성정이 그의 그림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조선 후기의 이름난 예술가 김정희가 제주에서 9년, 그리고 함경도에서 1년 남짓 유배 생활을 했듯이, 윤형근은 10년 동안 창살 없는 감옥에 있었다. 두 사람이 유배나 고난 속에서 보낸 세월이 비슷한 것처럼, 역사에는 한 사람은 19세기에, 또 한 사람은 20세기에 위대한 인물로 남았다.
이듬해 독일에서 윤형근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곳에서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은 듯했다. 전시가 끝난 뒤 어느 날 아침 윤형근이 우리 집에 찾아와 전시 도록을 건넸다. 그런데 오후에 그것을 다시 가져가 버렸다. 도록이 여러 권 있었을 텐데 왜 다시 가져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의문은 10년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도록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 실려 있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는 그가 1956년 서대문형무소에 있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나는 또 그가 보도연맹 학살, 국립서울대학교 설립 반대 투쟁, 여고 입시 비리 사건을 비롯해 목숨이 극히 위태로웠던 네 번의 큰 사건에 휘말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을 법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실들이 왜 여전히 감추어져 있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윤형근의 그림은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한다. 그의 예술을 순수한 조형예술의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예술이 표현주의적 경향을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조형적 특질에서 오는 미묘한 즐거움을 일부러 멀리했다. 그 결과 그의 그림은 더욱 힘이 세졌다. 그는 늘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편에 섰다. 강자의 편에 서거나 이득을 좇는 것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그릇되고 불의한 것을 가차 없이 비판했고, 늘 양지만 좇는 이들을 소인배라 불렀다. 그는 시대의 반골로서 늘 깨어 있었고 정의에 목말라했다.
그의 그림에는 꼿꼿한 위엄, 혹은 참되고 분명하며 간결하고 깨끗하고 서늘한 무언가 속에 여성적이고 따뜻하며 부드러운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그의 그림은 조선 선비의 정신을 몸으로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윤형근의 그림은 그린 사람을 꼭 닮았다. 그의 그림은 큰 뜻을 품은 큰 사람이 만들어 낸 큰 작품이다. 그것은 엄청난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충청도 사람이었지만, 그의 작품에는 정신적인 무언가, 깊은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무언가, 고구려의 기상 같은 무언가가 있다.
그의 그림은 그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표의문자와 같다. 그린 것이라기보다 내쉰 것처럼 보인다. 그의 내면은 험준한 산들로 빽빽이 들어찬 듯하다. 그것을 어떻게 한 화면에 담아낼 수 있었을까. 그의 화면은 덜어 낼 수밖에 없다.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하얀 물줄기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윤형근의 그림은 언어가 없는 곳에 있다.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이 서로의 접점을 찾으며 윤형근 그림의 새로운 면모로 드러난다. 그의 화면은 그의 삶을 꾸밈없이 드러낸 것이다. 흰색 속에 또 다른 흰색이 있고, 검정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검정의 농담이 있다. 그의 그림에는 한강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양감도 배어 있다. 작가와 그림은 서로 닮는다. 윤형근의 그림은 작가 자신을 닮았다. 우리는 때때로 윤형근과 그의 그림이 닮은 데에 놀란다. 그의 모습이 그림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윤형근의 그림은 점점 더 그를 닮아 간다. 그리고 그를 떠나 영원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의 그림이 그로부터 독립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의 그림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작가는 20세기의 격동기를 살아간 가장 참된 인간으로 죽지 않을 것이며, 그의 그림은 역사 속에서 가장 믿을 만한 그림의 본보기로 남을 것이다.
그의 검은 추상 이미지는 불의에 맞서는 정신으로 한층 매서워졌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아픔을 화면에 품은 채, 숭고한 정신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에 죽지 않는 시를 새겨 놓았다.
"세상이 병들면 시인의 마음은 슬퍼진다." 소설 『25시』로 잘 알려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서울에 왔을 때 한 말이다. 그림의 진실과 삶의 진실을 떼어 놓을 수 있을까. 윤형근의 예술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이 물음을 떠올린다. 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렵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선이 들어간 윤형근의 그림 몇 점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나라가 위기에 놓였을 때 예술이 온전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 나라가 망하면 사람이 일어선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전두환이 권력을 잡은 뒤 윤형근은 족쇄에서 풀려났다. 10년 만의 해방이었다. 그는 1980년 파리로 건너갔다가 2년쯤 뒤 서울로 돌아왔다. 그 뒤로 그의 검은 기둥 그림에는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흑단처럼 검던 그의 그림은 더 이상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온갖 고난을 다 겪고 난 뒤에 어떻게 어둠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개 말년에 어떤 밝은 기운을 드러냈다. 윤형근의 그림도 그러했다. 그는 어둠을 이겨 냈다. 그의 예술은 노대가의 여유를 품은 채 한국적인 밝음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예술에는 가야 할 먼 길이 있고, 그것이 예술이 지닌 큰 매력의 일부다. 윤형근은 미완의 것을 알 수 없는 공간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격동의 시대는 끝났다. 윤형근이 그 길고 암울한 세월을 어떻게 견뎌 냈는지 나는 모른다. 그의 아내이자 화가인 김영숙(김환기의 딸)의 가슴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그의 그림에는 이 모든 이야기가 배어 있지만, 그림은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의 세월을 겪어 본 사람만이 윤형근 예술의 참뜻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전시 도록, 서울, 20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