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
주디스 스타인, 1992
재현적 요소가 사라질수록 오히려 내용이 확장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현대미술의 역설이다. 특정한 문화적 유산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에게는 구상보다 추상이 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 화가 윤형근은 모더니즘의 보편성과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보다 무형의 차원을 함께 다루는, 절제된 조형 어휘를 구사한다. 1928년에 태어난 윤형근은 한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일컫는 ‘앵포르멜’의 시기인 1950년대에 미적으로 성숙했다. 1960년대의 초기 회화는 기둥 같은 구조를 이루는 제스처의 표현력을 탐구했다. 평면과 입체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환원적 탐구는 바탕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에 안료를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작업이 마크 로스코와 모리스 루이스의 작업과 닮아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윤형근은 ‘에꼴 드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일련의 전시에서 유래한 이름)로 알려진 많은 한국 작가들처럼 모노크롬의 색조를 택했다. 그는 청색과 엄버를 제외한 모든 색을 버리고, 번진 기둥을 넓은 판으로 확장했다. 기름기 어린 채 퍼져 나가는 그 경계는 맞닿은 여백과 끊임없이 활발한 대화를 나누었다.
몇 년 전 윤형근은 팔레트에서 청색마저 덜어 내고, 자루 천 빛깔의 면천이나 리넨 위에 스며들거나 놓인 갈색의 폭에 집중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여러 미술관 소장품 속에서 윤형근의 작품 몇 점을 즐겁게 보았다. 그러나 그 매력의 본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장대한 규모의 진중한 회화로 이루어진 그의 개인전에 들어서고 나서였다. 그곳에는 감각적으로 풍부한 표면을 지니면서도 절제된 금욕적 내용을 발산하는 미니멀리즘 회화가 있었다. 어떤 사각형은 캐러멜처럼 졸인 설탕의 빛깔을, 어떤 것은 녹슨 금속이나 말라붙은 피의 색조를 띠었다. 모두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시각적 유비다.
윤형근의 단일한 형상은 물감을 번지게 하고 스며들게 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마치 그림 그리기가 자연의 작용과 자매 관계에 있는 활동인 것처럼. 그는 경계를 아득하게 만드는 데 탁월하다. 갈색의 기둥은 흙내음 나는 후광을 내뿜고, 그 가장자리는 마모에 의해 다듬어진 듯 보인다. 의미심장하게도 작가는 쓰러진 나무가 천천히 흙으로 썩어 가는 모습을 우연히 본 경험이 자신에게 오래도록 중요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실제로 윤형근은 최근 회화의 제목을 모두 ‘엄버’라고 붙이는데, 이는 말 그대로 흙에서 유래한 안료의 이름이다.
동아시아의 비평가들은 윤형근 작품 속 여백이 지닌 정신적 힘에 주목했고, 그의 회화가 이른바 ‘기교 없는 예술’로 불리는 한국 전통 도자기의 정서를 울린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무기교의 특성은 화가 이우환도 언급한 바 있는데, 그는 동시대 작가인 윤형근의 작품을 “분석적이지 않고, 원초적이며, 형언할 수 없이 비존재적인 것”이라고 묘사했다.
처음에 윤형근의 회화는 리처드 세라의 코르텐 강철 구조물과 같은 조형 언어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이 엄숙한 캔버스들은 한국의 구체적인 문화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감지될 만큼 강력한 정신적 기운을 내뿜는다. 무상함에 대한 시각적 명상으로서, 그 권위는 견줄 데가 없다.
* 『Art in America』 1992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