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
이경성, 1991
'황색지대(Yellow Zone)'란 중앙아시아 고비사막에서 일어나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태평양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는 이른바 황사가 만들어 낸 지역을 일컫는다. 이 현상은 고유한 문화 영역을 지닌 아시아의 한 지역을 규정해 왔다. 거센 바람이 자연의 흙 입자를 남동쪽으로 실어 날라 모든 것을 흙빛으로 물들이기에 이 지역을 '황색지대'라 부른다. 동양의 문화와 정신은 이 비옥한 땅에서 꽃피었다. 동양의 정신은 극동의 세 나라, 곧 중국, 한국, 일본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아우른다.
윤형근은 번트 엄버와 울트라마린 두 가지 색만으로 안료를 캔버스 본연의 색과 어우러지게 한다. 그 결과는 수묵화에 가깝다. 작가의 색은 땅을 상징적으로 그려 낸 것으로, 엄버는 흙을, 청색은 바다를 나타낸다. 이 색들의 균형은 바탕이 면천인지, 리넨인지, 종이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윤형근의 그림에는 '형태'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편으로는 화면을 가로세로로 가르며 공간을 고르고 나누는 황갈색이 형태감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윤형근 예술의 핵심은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의 개념이다. (...)
윤형근의 그림은 시간과 공간 속의 '존재', 곧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살아 있는 존재의 증거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의 작업이 보여 주는 이러한 변화를 약점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변화가 그의 예술을 가장 흥미롭고 독특하게 만든다. 화면을 대담하게 가르는 두 개의 힘찬 검은 기둥은 차츰 하나로 모여 단일한 기둥을 이룰 것이다. 두 기둥이 하나가 되기까지의 그 시간이 곧 삶의 증거이며, 어쩌면 윤형근이 다다른 자연과 예술의 궁극적인 철학일 것이다.
* originally from the exhibition catalog of
Yun Hyong-keun's solo exhibition
held at Inkong Gallery, Seoul, 1989
** English version from Working with Nature:
Contemporary Art from Korea Tate Gallery Liverpool, 1992,
p35